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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최고 인기의 비결은 크게 늘어난 여성 관중의 열광
그라운드 '생리대 광고'가 입증, 구단들도 여성 팬 유치 경쟁
'구매의 83%, 여성이 결정' 조사도… 여성이 흥행 열쇠라는 점 인식해야

고영섭 오리콤 사장

나는 '0대0' 야구 경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주위에서 인정하는 열혈 야구 마니아다. 업무 때문에 야구장을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손님과 식사 중에도 중간 중간 경기 결과를 알아보며 관심의 절반은 그곳에 가 있을 정도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곤 했다. 서울 경기장뿐 아니라 인천 문학경기장도 자주 갔고, 대전 경기장까지 갔다가 폭우로 경기가 취소돼 되돌아오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 높은 콘텐츠 중 하나는 프로야구다. 역대 최고 관람객 수인 800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일 것 같고, TV 시청률도 계속 높아져 광고 단가도 매년 20%씩 오르고 있다. 화면에는 가상광고도 넘쳐나고 프로야구 연간 타이틀 스폰서 비용도 사상 최고인 50억원을 돌파했다.

무엇이 프로야구를 최고 인기 콘텐츠 자리에 올려놓았을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대회 선전(善戰), 하루만 지나도 순위가 바뀌는 흥미진진한 순위 싸움, 박찬호·이승엽 등 해외파 스타들의 복귀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 같은 야구 마니아는 언제나 마니아였다. 축구도 기적같이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고 이번엔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믿기 힘든 결과까지 얻어냈지만 국내 프로축구의 팬층(層)은 두껍지 못하다.

얼마 전 정확히 2년 만에 프로야구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최근 프로야구 인기의 근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장을 들어서는 순간 나의 오감(五感)을 자극한 것은 달라질 게 별로 없는 그라운드가 아니라 관중석이었다. 그것도 여성이었다. 남성보다 여성의 응원 소리가 훨씬 더 크고 열정적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거나 '하의(下衣) 실종' 패션쇼라도 하듯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등을 입고 각선미를 뽐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 관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기 내내 춤추고 합창하고 율동을 이어갔다. 응원석은 야구장이 아니라 대규모 콘서트장 같았다. 그라운드에서는 남자 선수들이 뛰고 있었지만 관중석에서는 10번째 선수인 여성들이 뛰고 있었다. 남성 주도의 다소 험악하고 거친 모습의 야구장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 하나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라운드 한쪽 벽에 나붙은 생리대 광고였다. 야구장에 치킨·햄버거·음료수 광고가 아니라 생리대 광고가 나붙다니…. 광고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따라다닌다. 생리대 광고는 야구장의 여풍(女風)을 상징한다.

여성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첫째 이유는 응원이 즐겁기 때문이고, 둘째는 경기장에서 데이트하며 먹는 '치맥(치킨과 맥주)'이 좋아서라고 한다. 남녀가 각기 다른 팀을 응원하면서 게임하듯 즐기기도 하고, 전광판으로 키스 장면을 보여주는 키스 타임에는 여성들이 더 적극적이다. 여성들에게 야구는 이제 볼거리를 넘어 즐길거리가 된 것이다. 프로야구단들은 여성팬 유치를 위해 '퀸즈데이' '레이디데이'를 정해 여성 할인이나 경품 제공 행사를 했고, 여자대학에서 야구 규칙이나 야구장 패션 등 특강과 이벤트를 열었다. 야구장에 여성을 위해 파우더룸, 심지어 수유실(授乳室)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질렀고, 보수적인 남성의 영역이던 판사 임용에서 여성의 임용률이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번 19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투표율은 남성보다 높았고, 며칠 전에는 사상 처음으로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선출됐다.

마케팅 대가인 톰 피터스는 여성을 '21세기 미지(未知)의 시장'이라고 표현하면서 모든 구매의 83%를 여성이 결정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로 국내 비듬 샴푸 구매자의 85%가 여성이고, 남성 화장품 구매자의 80%가 여성이다. 비인기 종목 스포츠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을 원한다면 프로야구의 진짜 성공 요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성이 전체 관중의 40%라는 비중만큼의 배려와 고려가 아니라 전체 흥행의 열쇠로서 여성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세심히 배려해 큰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어찌 프로야구장뿐이겠는가? 남성성(性)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저항과 반항의 상징인 록(Rock) 페스티벌에도 여풍(女風)이 불어 반항 대신 개성, 저항 대신 섹시가 넘쳐난다. 흥행에 목마른 모든 사람은 기억해야 한다. "떠오르는 거리와 문화에는 여지없이 핑크빛 물결이 넘쳐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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